posted by 정재한
2008. 6. 24. 15:41
장르별 독보적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 21명의 달인들의 기사를 스크랩합니다.
안에서 밖에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오늘의 한국 영화를 이끌어온 수많은 달인들을 찾아 헤매길 한 달. 영화 안팎의 분야별 달인을 만나기 위한 노심초사 동분서주였다. 오직 영화만을 위해 달려온 ‘영화의 달인’ 스물한 분의 면면을 직접 만나보는 자리다. 이런 달인들을 보셨는지? 못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이 자료는 movieweek 의 기사내용을 퍼온 것입니다.)
스테디캠의 달인 최초 여경보 선생
영화지 기자보다도, 모든 영화를 심의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보다도 먼저 영화를 보는 곳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용 편집본을 전 세계 최초로 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필름에 자막을 넣는 업체인 씨네메이트다. 그리고 씨네메이트에는 스크린 뒤, 안 보이는 곳에서 우리의 편안한 영화 관람을 책임지며 20년 넘도록 자막만 파온 류호원 실장이 있다. 찌는 듯한 오후, 성수동의 한 골목에서 찾은 국내 최대의 자막 업체 씨네메이트에서는 <크로우즈 제로>와 <강철중>의 해외판 자막이 돌아가고 있었고, 곧 프린트 350벌을 작업해야 하는 <원티드>가 들어올 예정이라 긴장감이 맴돌았다. 7~8년 전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도장을 찍어 자막을 넣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고 모든 자막을 레이저가 알아서 넣어준다. 그동안 자막 넣는 장비를 손수 개발해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예전에는 다섯 곳이 있어 바쁠 땐 나눠 주고 손 빌 땐 나눠 받는 식으로 십시일반하며 돕고 지내던 자막 업체들이 모두 문을 닫은 후 씨네메이트만 홀로 남았다. 그 후 신생 업체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가 하루에 무려 80벌을 작업하?씨네메이트를 찾는단다. 역시 달인의 현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림 기자
실용분장의 달인 응용 박예리 선생
1994년, <젊은 남자> 현장에 우연찮게 들어와 영화판의 활기에 반하는 바람에 그대로 안착해 분장팀장까지 오른 박예리 팀장. <약속><가문의 위기><가문의 부활><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을 거치는 동안 매번 마지막 작품이라 다짐했지만, 언제나 다음 작품이 들어오면 이상한 마력 때문에 또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동안 늘은 것은 현장에서의 적응, 적용력과 어떤 상황에서라도 정해진 시간 내에 완벽한 분장을 해서 내보낼 수 있는 실력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현장에 주인공 한석규가 백발 컨셉트를 가져왔을 때, 박예리 팀장의 눈앞은 새카매졌다. 새로 자라는 모발을 그때그때 염색하기에는 한석규의 모질이 너무 연약했고, 제품을 사용하자니 어색할 것 같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몇 년째 백발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던 한석규의 고집은 꺾을 길이 없었고, 그때부터가 자연스러운 백발과의 싸움이었다. 화이트, 실버, 트림, 스프레이, 리튀드... 시판되는 모든 제품을 놓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섞어도 보고, 부분부분 섞어 발라보기도 한 결과 딱 이거다 싶은 조합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저어했지만 매일 칫솔로 한 올 한 올 은발 분장을 끝내면 뿌듯함이 몰려왔다. 영화 분장은 협찬도 적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영화판의 원생적인 활기 때문에 매번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박예리 팀장의 수줍은 비소가 아름답다. 이해림기자
디테일 분장의 달인 섬세 황현규 선생
황현규 팀장은 분장을 시작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분장만큼 잘 어울리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중반 무렵, 주위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과감하게 분장이라는 낯선 분야에 자신을 던졌다. 분장의 명문이라 알려진 독일 메피스토 분장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1995년 배창호 감독의 <러브 스토리>를 시작으로, <깊은 슬픔> <정>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박하사탕>
<비천무>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인형사> <형사 Duelist> <눈부신 날에><원스어폰어타임>에 이르기까지 20여 편이 넘는 영화에 그녀만의 섬세한 손길을 새겨 넣었다. 분장사가 미용사 자격증을 갖춰야만 하는 독일에서 공부한 그녀는 헤어, 메이크업, 특수분장은 기본이고, 가발과 수염 등을 직접 짜는 기술을 배웠고, 이를 영화에 접목시켰다. 배우의 캐릭터에 맞게 직접 자신이 정교하게 짠 가발과 수염을 사용하고 있는 것. 머리 사이즈를 재고 석고를 뜨거나 밴드를 대서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짜서 완성하는 데에는 보름이라는 인내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녀의 꼼꼼한 손을 거친 가발은 <러브 스토리>의 배창호 감독, <박하사탕>의 설경구, <청춘>의 배두나, <비천무>의 신현준 머리 등에 감쪽같이 얹혔다. 언젠가 백발이 듬성듬성한 가발을 노인 캐릭터에 사용해 보고 싶다는 그녀는 겉모습이 아닌 사람의 마음까지 분장하는 매력적이고 꼼꼼한 분장사로서 영화 현장의 즐거움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중이다. 안영윤 기자
동시녹음의 달인 득음 김범수 선생
김범수 기사는 우리나라 동시녹음 1세대다. 동시녹음이 흔치 않았던 1978년,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으로 우진필름에 입사해 양후보 기사(<심봤다>로 1979년 대종상 기술상 수상)를 스승으로 삼은 그는 1978년 <율곡과 신사임당>의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심봤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등에서 국내 최초의 붐 맨으로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비로소 동시 동음 기사로 입문한 것은 정진우 감독의 1984년 작 <자녀목>부터. 사실 성우가 배우의 목소리를 대신하던 시절이었기에 동시녹음 때문에 직장을 잃었다는 성우들의 원성을 듣는가 하면, 쇠를 깎아 만든 6~7미터 길이의 무거운 붐 마이크를 드느라 팔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고, 조수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야만 했던 때도 있었지만 김범수 기사는 자신이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임권택 감독의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를 두 번째 작품으로 <티켓> <서편제> <투캅스> <넘버 3> <검은집>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민감한 귀를 거쳐 소리가 완성된 작품은 800여 편에 이른다. 오랜 세월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귀가 움직거리고, 귀에서 ‘딸각’ 소리가 발산되는 신기한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 여전히 스위스제 아날로그 녹음기인 ‘나그라’를 사용하며 디지털로 변환해 사용하는 두 번의 과정을 고집하고 있다. “나그라가 디지털에 비하면 소리의 폭이 넓고 깊으며 부드럽다. 그 소리는 디지털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 쉰이 넘은 지금도 현장에만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는 열혈 영화 청년의 심장을 간직한 진정한 소리의 달인이며 장인이었다.
안영윤 기자
카메오의 달인 액션 배장수 선생
어지간한 배우들도 출연작 편수로는 이 분 앞에 명함을 못 내민다. <경향신문>의 영화기자로 현장을 누비는 동안 카메오로 출연한 작품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까지 마흔아홉 편이 됐기 때문이다. 부국장, 선임기자 등 직위는 갈수록 높아져도 그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글을 열정적으로 써나가고 있다. 카메오 출연은 기사 작성과는 달리 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의 표현이다. 연극을 했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주변의 여건과 여러 상황들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말았다. 하지만 현장에 대한 열정은 그를 취재 데스크 앞에 앉혀두지 않았다. 이런 열정 탓에 한때는 직접 제작에 손을 댔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장편 영화 한 편의 경력을 가진 이가 한없이 부럽다. “그래도 세계 3대 영화제에 진출한 영화들에 제가 출연했다는 거, 자부심이 안 생길 수 있나요.”(웃음) 말 그대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사실 화려하다. 임권택 이창동 감독부터 강우석 강제규 감독에 이르기까지 작품성과 흥행성의 양 다리를 두루 오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월드 무비 스타가 아닐 수 없다. 기자로서, 또 작품 속의 일원으로서 두루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배장수 기자. 현재 그의 바람은 ‘한국 영화 산업이 멋지게 재도약하는 것’, 바로 그것뿐이다. 정지원 기자
효과음의 달인 폴리 이승호 선생
영화 <므이>를 보면 순간적으로 ‘벽지 뜯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장면이 있다. 공포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이 장면을 위해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든 사람이 폴리아티스트 이승호 실장이다. “그냥 벽지를 발라놓고 떼어 봤는데 느낌이 영 아니더라고요.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다가 벽지에 풀을 발라 붙인 다음 발로 밟아봤는데, 이거다! 했죠.” 그는 이 외에 공포 영화 <아랑>,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와 <즐거운 인생>, 최근작 <비스티 보이즈> 등 수십 편의 영화 효과음을 담당했고, 현재 영화 <그들이 온다>의 倖?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발자국 소리가 다 똑같이 들렸어요. 하지만 실제 작업을 하면서 발자국 소리에도 수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일반적으로 영화 한 편을 작업하는 데 꼬박 일주일 정도, 공포 영화나 CG가 많이 들어간 영화의 경우 15~20일이 걸린다. 10만 가지 이상의 효과음이 저장돼 있는 라이브러리를 활용할 때도 있지만, 영화 속 상황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적절한 효과음을 만든다. 밤샘 작업도 많고 실체 없는 소리를 만들어야 할 때 창작의 고통도 겪지만 그에게 영화는 천직이다. “이제 와서 다른 일 할 수나 있겠어요?(웃음)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만큼 저한테 맞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남은경 기자
영사실의 달인 상영 이경섭 선생
영사실 너머 상영관에선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오프닝이 한창이었고, 지난 40년간 영사실을 지켜온 달인은 그 옛날 <인디아나 존스>의 첫 상영을 회상했다. 열여덟 살부터 영사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던 진정한 영사실의 달인 이경섭 이사는 지금 씨너스 이수, 분당, 이채는 물론 남산 자동차 극장까지 도맡고 있다. 전국에 필름이 아홉 벌 들어오는 게 전부였던 그 옛날, 자전거에 필름 통을 싣고 중간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며 필름을 운반하던 시절부터 그는 영사실에서 한평생을 보냈다. “필름이 뒤엉켜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었지.(웃음) 지금이야 필름 귀한 줄 모르지만, 그 때는 필름을 자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그의 철칙은 좋은 극장이란 서비스가 좋은 극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상영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그의 손을 거친 극장은 정교한 사운드와 완벽한 영사 시스템에 혀를 내두를 정도. 극장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사님 관은 스피커로 만들어 드릴 거예요”라고 할 정도로 좋은 극장을 향한 그의 노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구수한 웃음과 인자한 미소로 영사실을 도맡고 있는 달인. 인생의 99.9퍼센트가 영화로 이뤄졌다 말하는 그의 손은 필름과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이유진 기자
콘티의 달인 관심 이규희 선생
2,000컷의 그림이 정성스레 그려진 영화 <타짜>와 <미녀는 괴로워>의 스토리보드북. 영화 감독의 시나리오는 스토리보드 작가 이규희 씨의 손끝을 거쳐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보통 3주 정도 콘티 회의를 진행하는데,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 한 컷 한 컷 아이디어를 모아 러프 콘티를 그리죠. 그걸 토대로 두어 달 동안 꼼꼼하게 스토리보드를 만들고요.” 그녀는 2000년 영화 <후아유>로 데뷔해 최근 <대털>까지 열다섯 편의 스토리보드를 진행했다. 막바지 작업 중인 영화 <대털>은 원작 만화를 토대로 하되 영화만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작업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스카우트>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인 데다, 김현석 감독님과부터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까지 작업을 함께 했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린다고 콘티 작가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순 없다. 시나리오의 최초 독자로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이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엄마를 찾아갔다가 자신의 경기 티켓을 발견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엄마가 감사용의 경기에 갔던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넣자는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죠.”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 요즘 체력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그녀. 그녀의 손끝을 거쳐 탄생할 영화들을 기대해 보자. 남은경 기자
특수효과의 달인 폭파 홍장표 선생
피바다와 폭파는 내 손 안에서! 이펙트 스톰의 홍장표 실장은 그동안 <여고괴담 4-목소리> <신데렐라> 등의 공포 영화와 <왕의 남자> <황진이> 등의 사극, 그리고 <님은 먼곳에>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의 전반을 오가며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를 끝마치고 다음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태국에서 전쟁 신을 찍는 동안 현지 스태프들과의 소통 및 국내와 다른 장비와 재료 등으로 인해 두통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프로는 다른 법.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에 적응하고 스태프들과 현지 장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15년차의 경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언제나 폭파 신을 준비할 땐 긴장된다. 특히 배우들의 동선이 복잡하게 얽힐 땐 시야를 넓게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 “화약을 쓰는 만큼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습니다. 안전하게 원하는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철저히 계산한 끝에 촬영에 들어가죠.” 최근엔 일반 관객까지도 특수효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노력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길을 다닐 때도 사고 현장이나 이상한 현상 등에 바짝 주목하며 항상 연구하는 습관을 가지려 한다. “이제 국내 기술도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습니다. 빨리 한국 영화 산업이 되살아나서 규모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가 보여줄 것도 많아지겠죠.”(웃음) 정지원 기자
비디오 수집의 달인 모둠 안규찬 선생
을지로 3가역을 따라 구 쁘렝땅백화점으로 들어가면 ‘영화도서관 청춘극장’이 나온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모든 영화들이 총망라돼 있는 이곳 ‘청춘극장’의 안규찬 대표는 국내에서 출시된 한국 영화의 비디오는 99퍼센트 가까이 소장하고 있다. 정식 출시되지 않은 영화를 감독에게 직접 넘겨받은 것까지 합친다면 100퍼센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외화의 경우도 국내 출시작이면 거의 모든 작품을 아우른다. 워낙 영화를 좋아했던 탓에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전국의 비디오 가게를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작품이 모이자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지금의 자리에서 ‘청춘극장’을 운영한 지 어느새 8년이 됐다. ‘청춘극장’의 독보적인 점은 고전으로 불리는, 또는 히트작과 예술 영화 위주의 컬렉션뿐 아니라 B급 영화는 물론 개봉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모든 작품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스크린에서 본 배우 윤정희의 매혹적인 모습을 잊지 못해 윤정희 데뷔 40주년 기념 특별전을 기획하는 등 한국 고전을 알리는 데에도 힘을 써왔다. 최근엔 소장 작품을 근거로 온라인에서의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움직이는 영화 사전, 문화 문화유산으로서 영화의 소중함을 아는 안규찬 대표. 진정 그를 달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지원 기자
자원활동의 달인 봉사 송재호 & 서유정 선생
영화제의 꽃, 자원활동의 달인을 찾아 나선 기자에게 반가운 제보가 들어왔다. 2006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9회, 200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5회 경력을 자랑하는 송재호 서유정 씨를 추천받은 것. 둘의 경력을 합치면 도합 14회, 웬만한 국내 영화제를 모두 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촬영을 위해 챙겨온 아이디카드에서부터 달인의 포스가 물씬 풍겨오는 두 사람이 쏟아놓은 영화제 에피소드는 명랑 쾌활 소동극 한 편을 감상하듯 흥미진진하다. 재미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영화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둘은 자원활동가로서의 덕목으로 ‘친화력’을 꼽는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영화가 만나는 것이 영화제인 만큼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태도야말로 자원활동가의 달인으로서 필요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말 그대로 3D다. 셔틀버스는 몸이 힘들고, 티켓은 머리가 힘들고, 상영관은 마음이 힘들고.(웃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커서 쉽게 떨쳐내기 힘들달까?” 팔도강산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쫓아갈 준비를 갖춘 자원활동가의 달인이 있어 우리들의 영화 축제는 더욱 더 활기차다.
차량 개조의 달인 척척 노승회 선생
노승회 기사는 유년 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남들이 무릎 꿇고 썰매를 탈 때, 그는 다리를 쫙 뻗고 앉을 수 있도록 썰매를 개조해 부러움을 샀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오랜 친구 김병일 촬영감독은 결국 노승회 기사를 영화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복수는 나의 것>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때까지만 해도 노승회 기사의 직책은 다양한 카메라 세팅을 관장하는 ‘키 그립’(Key Grip)이었다. 그러나 <중독>의 자동차 액션을 경험하고 방향을 선회, 자동차 액션용 카메라 차량을 제작하는 ‘슈팅카’ 전문가로 거듭났다. 이후 <쏜다> <그놈 목소리> <화려한 휴가> <달콤한 인생> 등 자동차 액션이 등장하는 영화들 뒤에 항상 그가 있었다. <각설탕> 후엔 말과도 친해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중국 원정에도 합류했다. 약 13분 동안 펼쳐지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대추격 신은 그가 중국에서 자재를 구해 힘겹게 만든 슈팅카 두 대에 각각 카메라를 싣고 촬영한 장면이다. ‘콘티 보면 답 나온다’는 그는, 감독이 어떤 어려운 앵글을 제시해도 척척 해결한다. 현재 <마린보이>와 <박쥐>의 자동차 액션 신을 준비 중이며, 김병일 촬영감독과 한국 최초로 3D 촬영을 위한 카메라 세팅 기술을 개발해 작은 영화도 완성했다. 지금 가장 큰 바람은 한국 영화가 잘되는 것. “그래야 자동차 액션 영화도 많이 나와서 개발할 것도 많아지겠죠.” 홍수경 기자
자막의 달인 완벽 류호원 선생
영화지 기자보다도, 모든 영화를 심의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보다도 먼저 영화를 보는 곳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용 편집본을 전 세계 최초로 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필름에 자막을 넣는 업체인 씨네메이트다. 그리고 씨네메이트에는 스크린 뒤, 안 보이는 곳에서 우리의 편안한 영화 관람을 책임지며 20년 넘도록 자막만 파온 류호원 실장이 있다. 찌는 듯한 오후, 성수동의 한 골목에서 찾은 국내 최대의 자막 업체 씨네메이트에서는 <크로우즈 제로>와 <강철중>의 해외판 자막이 돌튼“?있었고, 곧 프린트 350벌을 작업해야 하는 <원티드>가 들어올 예정이라 긴장감이 맴돌았다. 7~8년 전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도장을 찍어 자막을 넣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고 모든 자막을 레이저가 알아서 넣어준다. 그동안 자막 넣는 장비를 손수 개발해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예전에는 다섯 곳이 있어 바쁠 땐 나눠 주고 손 빌 땐 나눠 받는 식으로 십시일반하며 돕고 지내던 자막 업체들이 모두 문을 닫은 후 씨네메이트만 홀로 남았다. 그 후 신생 업체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가 하루에 무려 80벌을 작업하는 씨네메이트를 찾는단다. 역시 달인의 현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림 기자
외화 번역의 달인 위트 이미도 선생
우리나라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외화에는 일반명사화된 엔딩 크레딧이 있다. 바로 ‘번역-이미도.’ 1993년부터 15년간 450편의 외화를 번역했으니 외화 번역의 달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최근 번역한 영화 <쿵푸팬더> 이야기를 꺼내며 “포처럼 나도 시작은 우연했지만 준비는 되어 있었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어를 꾸준히 공부했던 그는 외화 판권 구매자를 도와 일하다 <블루> <화이트> <레드> 시리즈를 시작으로 외화 번역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영화 혹은 스케줄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 한 편을 번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열흘 정도. 번역할 때 그가 가장 유념하는 것은 정확하면서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이다. “그냥 직역해도 뜻은 통하겠지만 영화의 내용, 캐릭터의 이미지, 전달하려는 메시지 등과 잘 맞는 대사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말로 이런 표현을 ‘재창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신경 쓰는 것은 리듬감. “시조처럼 대사의 글자 수를 맞춘다. 그래서 관객들이 대사를 한 글자 한 글자씩 읽는 게 아니라 덩어리째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 대사와 영상?같이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투철한 직업정신과 끊임없는 노력. 그에게서 배운 달인의 덕목이다. 윤서현 기자
발권의 달인 신속 김상아 선생
“사랑합니다 고객님, 어떤 영화 관람하시겠습니까?”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상큼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김상아 씨.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에서 일을 시작한 지 8개월밖에 안 됐지만 스피디한 발권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똑 부러지는 스태프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붐비는 시간대는 아니지만 12시 출근 스태프들이 나오기 전인 오전에는 여러 업무를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발권은 물론 인터넷 예약, 주차권 판매를 거의 혼자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비결은 빠릿빠릿함과 친절함이다. “볼 영화와 시간, 좌석, 그리고 할인 카드까지 미리 정해서 오는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발권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데 이럴 때 ‘센스있게’ 내가 먼저 추천을 해주면서 고민할 시간을 없애는 게 방법이다.” 윤서현 기자
시사 진행의 달인 통솔 이혜진 선생
잠실 주경기장에도 사람을 줄 세워 차례대로 앉힐 수 있는 사람.” 맥스무비의 이혜진 대리를 시사 진행의 달인으로 추천한 사람의 말이다. “안 하면 안 했지, 하면 확실히 해야 되는 성격이에요. 대강, 대충 하는 걸 싫어해요.” 그녀가 맥스무비에서 일한 2년 4개월 동안 진행한 시사회는 약 700건. “줄 서 있는 꼴을 못 봐요.(웃음) 빨리 신분증 확인해서 표를 나눠주죠. 후기에 ‘맥스무비 시사는 안 기다려서 좋아요’라는 게 올라오면 뿌듯해요.” 하지만 표를 나눠주는 것만이 시사 진행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 배우들과 함께 보는 옆자리 시사회, 자정 시사회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당첨자를 뽑는 것도 그녀의 일이다. “영화사, 홍보사 분들과 많이 싸우는 편이에요. 저희 회원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면 전 싸워요.” 역시 달인은 강하다. 박은경 기자
인쇄의 달인 꼼꼼 유진아 선생
인쇄는 기계가 하는 거 아니냐고? 인쇄는 사람이 하는 거다. 영화 관련 인쇄물을 전문으로 하는 대경토탈의 유진아 팀장을 만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인쇄를 한다고 하면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 하지만 예전에 생계 수단으로 했던 때와는 달라요. 전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알면 알수록 어렵고. 자신이 없어져요.” 10년 동안 인쇄 일을 한 그녀의 말이다. 유진아 팀장이 하는 일은 진행과 관리. 하지만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혹 보도자료가 바쁘게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면, 보도자료를 넣는 봉투 붙이는 일까지를 다 직접 해서 넘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실수도 많이 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지금은 고2 때까지 미대 수험생이었던 실력을 발휘해 컬러의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내는 전문가가 됐다. 대부분 영화 일이 촉박하게 들어옴에도 목소리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는 게 유진아 팀장에 대한 영화계 사람들의 평가. “요즘이야 웹하드가 있으니 편하지만, 예전엔 무거운 외장 하드가 오고 갔죠. 돈을 많이 써서 보도자료 하나에도 특이하게, 화려하게 하려던 때도 있었고요. 그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병원에서 링거 맞고 회사 다니기도 했어요.” 요즘 영화가 침체기이니 당연히 영화 인쇄도 주춤 중. 그럼에도 그녀를 찾는 전화는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박은경 기자
영화 안무의 달인 고고 곽용근 선생
‘더 댄스 아카데미’의 곽용근 원장은 MBC 무용단으로 ‘춤꾼’ 이력을 시작했다. 이후 독립해 이름을 걸고 댄스학원을 차렸고, 아는 분 소개로 CF 안무와 인연을 맺었다. 한동안 화제였던 전지현의 S레이저 프린터 섹시댄스 및 정우성의 G 캐주얼 깜찍 댄스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영화는 <소년, 천국에 가다>로 시작해서 <천하장사 마돈나> <미녀는 괴로워> <모던보이>를 거치며서 “중요한 건 춤이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맥락에서, 조승우 신민아 주연의 <고고 70>은 진정한 야심작이다. 당시 트렌드세터였던 신민아의 춤 컨셉트는 천진과 우악. “한국인은 흑인의 100분의 1 정도를 췄을 것, 두 가지 동작만으로도 밤을 새우는 게 가능했다”는 인순이 선배의 조언을 얻어, 나름 앞서나갔던 70년대 소녀의 춤을 과장 없이, 천진하고 우악스럽게 안무했다. “70년대에 요즘 UCC 감성을 접목한 셈이죠.” 시나리오를 100번 읽고 음악감독과 오랜 협의 과정을 거친다는 그는, 지금까지 배워왔던 춤을 해체하며 한국표 안무를 만들고 있다. 한국 영화에는 ‘한국표 댄스’의 달인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홍수경 기자
DVD 수집의 달인 모아 문종현 선생
그러니까 그가 DVD를 수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1998년부터 DVD를 사 모았으니 수량이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하긴 그조차도 정작 자신의 소장 양을 파악할 수 없으니 추산할 수밖에. 그래도 짐작할 엄두가 안 들어 물어보니 “대략 7만 장 가량 되지 않을까요”라며 허허 웃는다. 충무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그는 현재 ‘드림텍’이라는 DVD 홍보 및 감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에 가보니 말로만 듣던 ‘달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무실을 빼곡하게 채운 DVD는 당연지사요, 희귀 LD와 각종 피겨들이 즐비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창고는 현재 DVD 때문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상태라는 사실. 25년간 제빵사를 해온(그는 일본 동경제과학교와 스위스 리치몬드 제과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우연히 미국의 한 친구가 선물로 준 외국 DVD를 보며 사운드에 감명을 받아서 수집을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불현듯 25년간 걸어온 길에서 급선회하는 것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궁금했다. “물론 많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그는 “행복하다”고 내내 힘주어 말했다. 그건 표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문득 벽장에 DVD를 꽂는 그의 환한 미소가 생각났다. 지용진 기자
현장 진행의 달인 만능 최지훈 선생
현장일지가 빼곡히 적힌 수첩부터 청테이프와 무전기까지, 등장부터 달인의 포스를 물씬 풍긴 최지훈 씨. 미술을 전공한 그가 제작부의 자질을 발견한 건 미술팀으로 참여한 <뜨거운 것이 좋아> 현장에서였다. 미술팀 일보다 제작부와 같이 현장 통제하는 게 더 익숙한 스스로를 발견한 그를 이미 주변에서도 미술팀이 아닌 제작부로 임명할 정도였던 것. 결국 그는 다음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에서 제작부 막내로 숨겨진 특기를 발휘했고 이젠 제작부에 뼈를 묻고 PD를 꿈꾸는 열혈 스태프다. “운전은 퀵 서비스보다 빠르게, 경찰보다 속도 측정기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청테이프 이용은 이삿짐센터 수준을 뛰어넘어야 하고, 계산은 은행원 수준으로! 어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웃음)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챙기는 그는 다음 영화 <우리집에 왜 왔니>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장소 헌팅을 위해 온갖 포털 사이트를 뒤지고, 관객들과 친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클(club.cyworld.com/wuljip)에 현장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있는 현장 진행의 달인 최지훈. ‘고양이보다 빠른 눈치’로 현장을 장악하는 그의 다음 영화 현장은 왠지 모르게 흥미진진할 것만 같다.
movieweek 이유진 기자
안에서 밖에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오늘의 한국 영화를 이끌어온 수많은 달인들을 찾아 헤매길 한 달. 영화 안팎의 분야별 달인을 만나기 위한 노심초사 동분서주였다. 오직 영화만을 위해 달려온 ‘영화의 달인’ 스물한 분의 면면을 직접 만나보는 자리다. 이런 달인들을 보셨는지? 못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이 자료는 movieweek 의 기사내용을 퍼온 것입니다.)
스테디캠의 달인 최초 여경보 선생
영화지 기자보다도, 모든 영화를 심의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보다도 먼저 영화를 보는 곳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용 편집본을 전 세계 최초로 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필름에 자막을 넣는 업체인 씨네메이트다. 그리고 씨네메이트에는 스크린 뒤, 안 보이는 곳에서 우리의 편안한 영화 관람을 책임지며 20년 넘도록 자막만 파온 류호원 실장이 있다. 찌는 듯한 오후, 성수동의 한 골목에서 찾은 국내 최대의 자막 업체 씨네메이트에서는 <크로우즈 제로>와 <강철중>의 해외판 자막이 돌아가고 있었고, 곧 프린트 350벌을 작업해야 하는 <원티드>가 들어올 예정이라 긴장감이 맴돌았다. 7~8년 전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도장을 찍어 자막을 넣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고 모든 자막을 레이저가 알아서 넣어준다. 그동안 자막 넣는 장비를 손수 개발해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예전에는 다섯 곳이 있어 바쁠 땐 나눠 주고 손 빌 땐 나눠 받는 식으로 십시일반하며 돕고 지내던 자막 업체들이 모두 문을 닫은 후 씨네메이트만 홀로 남았다. 그 후 신생 업체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가 하루에 무려 80벌을 작업하?씨네메이트를 찾는단다. 역시 달인의 현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림 기자
실용분장의 달인 응용 박예리 선생
1994년, <젊은 남자> 현장에 우연찮게 들어와 영화판의 활기에 반하는 바람에 그대로 안착해 분장팀장까지 오른 박예리 팀장. <약속><가문의 위기><가문의 부활><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을 거치는 동안 매번 마지막 작품이라 다짐했지만, 언제나 다음 작품이 들어오면 이상한 마력 때문에 또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동안 늘은 것은 현장에서의 적응, 적용력과 어떤 상황에서라도 정해진 시간 내에 완벽한 분장을 해서 내보낼 수 있는 실력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현장에 주인공 한석규가 백발 컨셉트를 가져왔을 때, 박예리 팀장의 눈앞은 새카매졌다. 새로 자라는 모발을 그때그때 염색하기에는 한석규의 모질이 너무 연약했고, 제품을 사용하자니 어색할 것 같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몇 년째 백발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던 한석규의 고집은 꺾을 길이 없었고, 그때부터가 자연스러운 백발과의 싸움이었다. 화이트, 실버, 트림, 스프레이, 리튀드... 시판되는 모든 제품을 놓고 테스트를 시작했다. 섞어도 보고, 부분부분 섞어 발라보기도 한 결과 딱 이거다 싶은 조합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저어했지만 매일 칫솔로 한 올 한 올 은발 분장을 끝내면 뿌듯함이 몰려왔다. 영화 분장은 협찬도 적고 힘들지만 '어떻게든 해내는' 영화판의 원생적인 활기 때문에 매번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박예리 팀장의 수줍은 비소가 아름답다. 이해림기자
디테일 분장의 달인 섬세 황현규 선생
황현규 팀장은 분장을 시작하며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분장만큼 잘 어울리는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중반 무렵, 주위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과감하게 분장이라는 낯선 분야에 자신을 던졌다. 분장의 명문이라 알려진 독일 메피스토 분장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는 1995년 배창호 감독의 <러브 스토리>를 시작으로, <깊은 슬픔> <정>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박하사탕>
<비천무>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인형사> <형사 Duelist> <눈부신 날에>
동시녹음의 달인 득음 김범수 선생
김범수 기사는 우리나라 동시녹음 1세대다. 동시녹음이 흔치 않았던 1978년,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으로 우진필름에 입사해 양후보 기사(<심봤다>로 1979년 대종상 기술상 수상)를 스승으로 삼은 그는 1978년 <율곡과 신사임당>의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심봤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등에서 국내 최초의 붐 맨으로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비로소 동시 동음 기사로 입문한 것은 정진우 감독의 1984년 작 <자녀목>부터. 사실 성우가 배우의 목소리를 대신하던 시절이었기에 동시녹음 때문에 직장을 잃었다는 성우들의 원성을 듣는가 하면, 쇠를 깎아 만든 6~7미터 길이의 무거운 붐 마이크를 드느라 팔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고, 조수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야만 했던 때도 있었지만 김범수 기사는 자신이 현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임권택 감독의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를 두 번째 작품으로 <티켓> <서편제> <투캅스> <넘버 3> <검은집>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민감한 귀를 거쳐 소리가 완성된 작품은 800여 편에 이른다. 오랜 세월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귀가 움직거리고, 귀에서 ‘딸각’ 소리가 발산되는 신기한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 여전히 스위스제 아날로그 녹음기인 ‘나그라’를 사용하며 디지털로 변환해 사용하는 두 번의 과정을 고집하고 있다. “나그라가 디지털에 비하면 소리의 폭이 넓고 깊으며 부드럽다. 그 소리는 디지털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 쉰이 넘은 지금도 현장에만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는 열혈 영화 청년의 심장을 간직한 진정한 소리의 달인이며 장인이었다.
안영윤 기자
카메오의 달인 액션 배장수 선생
어지간한 배우들도 출연작 편수로는 이 분 앞에 명함을 못 내민다. <경향신문>의 영화기자로 현장을 누비는 동안 카메오로 출연한 작품이 <강철중: 공공의 적 1-1>까지 마흔아홉 편이 됐기 때문이다. 부국장, 선임기자 등 직위는 갈수록 높아져도 그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글을 열정적으로 써나가고 있다. 카메오 출연은 기사 작성과는 달리 그가 영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의 표현이다. 연극을 했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지만 주변의 여건과 여러 상황들 속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고 말았다. 하지만 현장에 대한 열정은 그를 취재 데스크 앞에 앉혀두지 않았다. 이런 열정 탓에 한때는 직접 제작에 손을 댔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장편 영화 한 편의 경력을 가진 이가 한없이 부럽다. “그래도 세계 3대 영화제에 진출한 영화들에 제가 출연했다는 거, 자부심이 안 생길 수 있나요.”(웃음) 말 그대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사실 화려하다. 임권택 이창동 감독부터 강우석 강제규 감독에 이르기까지 작품성과 흥행성의 양 다리를 두루 오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월드 무비 스타가 아닐 수 없다. 기자로서, 또 작품 속의 일원으로서 두루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배장수 기자. 현재 그의 바람은 ‘한국 영화 산업이 멋지게 재도약하는 것’, 바로 그것뿐이다. 정지원 기자
효과음의 달인 폴리 이승호 선생
영화 <므이>를 보면 순간적으로 ‘벽지 뜯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는 장면이 있다. 공포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는 이 장면을 위해 세상에 없는 소리를 만든 사람이 폴리아티스트 이승호 실장이다. “그냥 벽지를 발라놓고 떼어 봤는데 느낌이 영 아니더라고요.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다가 벽지에 풀을 발라 붙인 다음 발로 밟아봤는데, 이거다! 했죠.” 그는 이 외에 공포 영화 <아랑>,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스타>와 <즐거운 인생>, 최근작 <비스티 보이즈> 등 수십 편의 영화 효과음을 담당했고, 현재 영화 <그들이 온다>의 倖?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발자국 소리가 다 똑같이 들렸어요. 하지만 실제 작업을 하면서 발자국 소리에도 수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일반적으로 영화 한 편을 작업하는 데 꼬박 일주일 정도, 공포 영화나 CG가 많이 들어간 영화의 경우 15~20일이 걸린다. 10만 가지 이상의 효과음이 저장돼 있는 라이브러리를 활용할 때도 있지만, 영화 속 상황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일일이 적절한 효과음을 만든다. 밤샘 작업도 많고 실체 없는 소리를 만들어야 할 때 창작의 고통도 겪지만 그에게 영화는 천직이다. “이제 와서 다른 일 할 수나 있겠어요?(웃음)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만큼 저한테 맞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남은경 기자
영사실의 달인 상영 이경섭 선생
영사실 너머 상영관에선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오프닝이 한창이었고, 지난 40년간 영사실을 지켜온 달인은 그 옛날 <인디아나 존스>의 첫 상영을 회상했다. 열여덟 살부터 영사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던 진정한 영사실의 달인 이경섭 이사는 지금 씨너스 이수, 분당, 이채는 물론 남산 자동차 극장까지 도맡고 있다. 전국에 필름이 아홉 벌 들어오는 게 전부였던 그 옛날, 자전거에 필름 통을 싣고 중간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며 필름을 운반하던 시절부터 그는 영사실에서 한평생을 보냈다. “필름이 뒤엉켜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었지.(웃음) 지금이야 필름 귀한 줄 모르지만, 그 때는 필름을 자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그의 철칙은 좋은 극장이란 서비스가 좋은 극장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상영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그의 손을 거친 극장은 정교한 사운드와 완벽한 영사 시스템에 혀를 내두를 정도. 극장 사람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사님 관은 스피커로 만들어 드릴 거예요”라고 할 정도로 좋은 극장을 향한 그의 노력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구수한 웃음과 인자한 미소로 영사실을 도맡고 있는 달인. 인생의 99.9퍼센트가 영화로 이뤄졌다 말하는 그의 손은 필름과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이유진 기자
콘티의 달인 관심 이규희 선생
2,000컷의 그림이 정성스레 그려진 영화 <타짜>와 <미녀는 괴로워>의 스토리보드북. 영화 감독의 시나리오는 스토리보드 작가 이규희 씨의 손끝을 거쳐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보통 3주 정도 콘티 회의를 진행하는데,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 한 컷 한 컷 아이디어를 모아 러프 콘티를 그리죠. 그걸 토대로 두어 달 동안 꼼꼼하게 스토리보드를 만들고요.” 그녀는 2000년 영화 <후아유>로 데뷔해 최근 <대털>까지 열다섯 편의 스토리보드를 진행했다. 막바지 작업 중인 영화 <대털>은 원작 만화를 토대로 하되 영화만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작업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스카우트>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인 데다, 김현석 감독님과
특수효과의 달인 폭파 홍장표 선생
피바다와 폭파는 내 손 안에서! 이펙트 스톰의 홍장표 실장은 그동안 <여고괴담 4-목소리> <신데렐라> 등의 공포 영화와 <왕의 남자> <황진이> 등의 사극, 그리고 <님은 먼곳에>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의 전반을 오가며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를 끝마치고 다음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태국에서 전쟁 신을 찍는 동안 현지 스태프들과의 소통 및 국내와 다른 장비와 재료 등으로 인해 두통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프로는 다른 법.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에 적응하고 스태프들과 현지 장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15년차의 경력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언제나 폭파 신을 준비할 땐 긴장된다. 특히 배우들의 동선이 복잡하게 얽힐 땐 시야를 넓게 가지고 집중해야 한다. “화약을 쓰는 만큼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습니다. 안전하게 원하는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철저히 계산한 끝에 촬영에 들어가죠.” 최근엔 일반 관객까지도 특수효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 노력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길을 다닐 때도 사고 현장이나 이상한 현상 등에 바짝 주목하며 항상 연구하는 습관을 가지려 한다. “이제 국내 기술도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습니다. 빨리 한국 영화 산업이 되살아나서 규모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그래야 제가 보여줄 것도 많아지겠죠.”(웃음) 정지원 기자
비디오 수집의 달인 모둠 안규찬 선생
을지로 3가역을 따라 구 쁘렝땅백화점으로 들어가면 ‘영화도서관 청춘극장’이 나온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모든 영화들이 총망라돼 있는 이곳 ‘청춘극장’의 안규찬 대표는 국내에서 출시된 한국 영화의 비디오는 99퍼센트 가까이 소장하고 있다. 정식 출시되지 않은 영화를 감독에게 직접 넘겨받은 것까지 합친다면 100퍼센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외화의 경우도 국내 출시작이면 거의 모든 작품을 아우른다. 워낙 영화를 좋아했던 탓에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전국의 비디오 가게를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작품이 모이자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지금의 자리에서 ‘청춘극장’을 운영한 지 어느새 8년이 됐다. ‘청춘극장’의 독보적인 점은 고전으로 불리는, 또는 히트작과 예술 영화 위주의 컬렉션뿐 아니라 B급 영화는 물론 개봉되지 않았지만 중요한 모든 작품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스크린에서 본 배우 윤정희의 매혹적인 모습을 잊지 못해 윤정희 데뷔 40주년 기념 특별전을 기획하는 등 한국 고전을 알리는 데에도 힘을 써왔다. 최근엔 소장 작품을 근거로 온라인에서의 데이터베이스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움직이는 영화 사전, 문화 문화유산으로서 영화의 소중함을 아는 안규찬 대표. 진정 그를 달인이라 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정지원 기자
자원활동의 달인 봉사 송재호 & 서유정 선생
영화제의 꽃, 자원활동의 달인을 찾아 나선 기자에게 반가운 제보가 들어왔다. 2006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9회, 200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5회 경력을 자랑하는 송재호 서유정 씨를 추천받은 것. 둘의 경력을 합치면 도합 14회, 웬만한 국내 영화제를 모두 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촬영을 위해 챙겨온 아이디카드에서부터 달인의 포스가 물씬 풍겨오는 두 사람이 쏟아놓은 영화제 에피소드는 명랑 쾌활 소동극 한 편을 감상하듯 흥미진진하다. 재미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영화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며 농담을 주고받는 둘은 자원활동가로서의 덕목으로 ‘친화력’을 꼽는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영화가 만나는 것이 영화제인 만큼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태도야말로 자원활동가의 달인으로서 필요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사실 말 그대로 3D다. 셔틀버스는 몸이 힘들고, 티켓은 머리가 힘들고, 상영관은 마음이 힘들고.(웃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커서 쉽게 떨쳐내기 힘들달까?” 팔도강산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쫓아갈 준비를 갖춘 자원활동가의 달인이 있어 우리들의 영화 축제는 더욱 더 활기차다.
차량 개조의 달인 척척 노승회 선생
노승회 기사는 유년 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남들이 무릎 꿇고 썰매를 탈 때, 그는 다리를 쫙 뻗고 앉을 수 있도록 썰매를 개조해 부러움을 샀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오랜 친구 김병일 촬영감독은 결국 노승회 기사를 영화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복수는 나의 것>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때까지만 해도 노승회 기사의 직책은 다양한 카메라 세팅을 관장하는 ‘키 그립’(Key Grip)이었다. 그러나 <중독>의 자동차 액션을 경험하고 방향을 선회, 자동차 액션용 카메라 차량을 제작하는 ‘슈팅카’ 전문가로 거듭났다. 이후 <쏜다> <그놈 목소리> <화려한 휴가> <달콤한 인생> 등 자동차 액션이 등장하는 영화들 뒤에 항상 그가 있었다. <각설탕> 후엔 말과도 친해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중국 원정에도 합류했다. 약 13분 동안 펼쳐지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대추격 신은 그가 중국에서 자재를 구해 힘겹게 만든 슈팅카 두 대에 각각 카메라를 싣고 촬영한 장면이다. ‘콘티 보면 답 나온다’는 그는, 감독이 어떤 어려운 앵글을 제시해도 척척 해결한다. 현재 <마린보이>와 <박쥐>의 자동차 액션 신을 준비 중이며, 김병일 촬영감독과 한국 최초로 3D 촬영을 위한 카메라 세팅 기술을 개발해 작은 영화도 완성했다. 지금 가장 큰 바람은 한국 영화가 잘되는 것. “그래야 자동차 액션 영화도 많이 나와서 개발할 것도 많아지겠죠.” 홍수경 기자
자막의 달인 완벽 류호원 선생
영화지 기자보다도, 모든 영화를 심의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보다도 먼저 영화를 보는 곳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용 편집본을 전 세계 최초로 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화 필름에 자막을 넣는 업체인 씨네메이트다. 그리고 씨네메이트에는 스크린 뒤, 안 보이는 곳에서 우리의 편안한 영화 관람을 책임지며 20년 넘도록 자막만 파온 류호원 실장이 있다. 찌는 듯한 오후, 성수동의 한 골목에서 찾은 국내 최대의 자막 업체 씨네메이트에서는 <크로우즈 제로>와 <강철중>의 해외판 자막이 돌튼“?있었고, 곧 프린트 350벌을 작업해야 하는 <원티드>가 들어올 예정이라 긴장감이 맴돌았다. 7~8년 전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도장을 찍어 자막을 넣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고 모든 자막을 레이저가 알아서 넣어준다. 그동안 자막 넣는 장비를 손수 개발해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예전에는 다섯 곳이 있어 바쁠 땐 나눠 주고 손 빌 땐 나눠 받는 식으로 십시일반하며 돕고 지내던 자막 업체들이 모두 문을 닫은 후 씨네메이트만 홀로 남았다. 그 후 신생 업체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가 하루에 무려 80벌을 작업하는 씨네메이트를 찾는단다. 역시 달인의 현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림 기자
외화 번역의 달인 위트 이미도 선생
우리나라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외화에는 일반명사화된 엔딩 크레딧이 있다. 바로 ‘번역-이미도.’ 1993년부터 15년간 450편의 외화를 번역했으니 외화 번역의 달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최근 번역한 영화 <쿵푸팬더> 이야기를 꺼내며 “포처럼 나도 시작은 우연했지만 준비는 되어 있었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어를 꾸준히 공부했던 그는 외화 판권 구매자를 도와 일하다 <블루> <화이트> <레드> 시리즈를 시작으로 외화 번역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영화 혹은 스케줄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 한 편을 번역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열흘 정도. 번역할 때 그가 가장 유념하는 것은 정확하면서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이다. “그냥 직역해도 뜻은 통하겠지만 영화의 내용, 캐릭터의 이미지, 전달하려는 메시지 등과 잘 맞는 대사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말로 이런 표현을 ‘재창조’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신경 쓰는 것은 리듬감. “시조처럼 대사의 글자 수를 맞춘다. 그래서 관객들이 대사를 한 글자 한 글자씩 읽는 게 아니라 덩어리째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한다. 대사와 영상?같이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투철한 직업정신과 끊임없는 노력. 그에게서 배운 달인의 덕목이다. 윤서현 기자
발권의 달인 신속 김상아 선생
“사랑합니다 고객님, 어떤 영화 관람하시겠습니까?”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상큼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김상아 씨. 롯데시네마 에비뉴엘관에서 일을 시작한 지 8개월밖에 안 됐지만 스피디한 발권 업무 처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똑 부러지는 스태프다. 그녀가 일하는 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붐비는 시간대는 아니지만 12시 출근 스태프들이 나오기 전인 오전에는 여러 업무를 동시에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발권은 물론 인터넷 예약, 주차권 판매를 거의 혼자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비결은 빠릿빠릿함과 친절함이다. “볼 영화와 시간, 좌석, 그리고 할인 카드까지 미리 정해서 오는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발권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데 이럴 때 ‘센스있게’ 내가 먼저 추천을 해주면서 고민할 시간을 없애는 게 방법이다.” 윤서현 기자
시사 진행의 달인 통솔 이혜진 선생
잠실 주경기장에도 사람을 줄 세워 차례대로 앉힐 수 있는 사람.” 맥스무비의 이혜진 대리를 시사 진행의 달인으로 추천한 사람의 말이다. “안 하면 안 했지, 하면 확실히 해야 되는 성격이에요. 대강, 대충 하는 걸 싫어해요.” 그녀가 맥스무비에서 일한 2년 4개월 동안 진행한 시사회는 약 700건. “줄 서 있는 꼴을 못 봐요.(웃음) 빨리 신분증 확인해서 표를 나눠주죠. 후기에 ‘맥스무비 시사는 안 기다려서 좋아요’라는 게 올라오면 뿌듯해요.” 하지만 표를 나눠주는 것만이 시사 진행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 배우들과 함께 보는 옆자리 시사회, 자정 시사회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당첨자를 뽑는 것도 그녀의 일이다. “영화사, 홍보사 분들과 많이 싸우는 편이에요. 저희 회원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면 전 싸워요.” 역시 달인은 강하다. 박은경 기자
인쇄의 달인 꼼꼼 유진아 선생
인쇄는 기계가 하는 거 아니냐고? 인쇄는 사람이 하는 거다. 영화 관련 인쇄물을 전문으로 하는 대경토탈의 유진아 팀장을 만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인쇄를 한다고 하면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어요. 하지만 예전에 생계 수단으로 했던 때와는 달라요. 전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알면 알수록 어렵고. 자신이 없어져요.” 10년 동안 인쇄 일을 한 그녀의 말이다. 유진아 팀장이 하는 일은 진행과 관리. 하지만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혹 보도자료가 바쁘게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면, 보도자료를 넣는 봉투 붙이는 일까지를 다 직접 해서 넘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실수도 많이 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지금은 고2 때까지 미대 수험생이었던 실력을 발휘해 컬러의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내는 전문가가 됐다. 대부분 영화 일이 촉박하게 들어옴에도 목소리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는 게 유진아 팀장에 대한 영화계 사람들의 평가. “요즘이야 웹하드가 있으니 편하지만, 예전엔 무거운 외장 하드가 오고 갔죠. 돈을 많이 써서 보도자료 하나에도 특이하게, 화려하게 하려던 때도 있었고요. 그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병원에서 링거 맞고 회사 다니기도 했어요.” 요즘 영화가 침체기이니 당연히 영화 인쇄도 주춤 중. 그럼에도 그녀를 찾는 전화는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박은경 기자
영화 안무의 달인 고고 곽용근 선생
‘더 댄스 아카데미’의 곽용근 원장은 MBC 무용단으로 ‘춤꾼’ 이력을 시작했다. 이후 독립해 이름을 걸고 댄스학원을 차렸고, 아는 분 소개로 CF 안무와 인연을 맺었다. 한동안 화제였던 전지현의 S레이저 프린터 섹시댄스 및 정우성의 G 캐주얼 깜찍 댄스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영화는 <소년, 천국에 가다>로 시작해서 <천하장사 마돈나> <미녀는 괴로워> <모던보이>를 거치며서 “중요한 건 춤이 아니라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맥락에서, 조승우 신민아 주연의 <고고 70>은 진정한 야심작이다. 당시 트렌드세터였던 신민아의 춤 컨셉트는 천진과 우악. “한국인은 흑인의 100분의 1 정도를 췄을 것, 두 가지 동작만으로도 밤을 새우는 게 가능했다”는 인순이 선배의 조언을 얻어, 나름 앞서나갔던 70년대 소녀의 춤을 과장 없이, 천진하고 우악스럽게 안무했다. “70년대에 요즘 UCC 감성을 접목한 셈이죠.” 시나리오를 100번 읽고 음악감독과 오랜 협의 과정을 거친다는 그는, 지금까지 배워왔던 춤을 해체하며 한국표 안무를 만들고 있다. 한국 영화에는 ‘한국표 댄스’의 달인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홍수경 기자
DVD 수집의 달인 모아 문종현 선생
그러니까 그가 DVD를 수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1998년부터 DVD를 사 모았으니 수량이 대충 짐작이 될 것이다. 하긴 그조차도 정작 자신의 소장 양을 파악할 수 없으니 추산할 수밖에. 그래도 짐작할 엄두가 안 들어 물어보니 “대략 7만 장 가량 되지 않을까요”라며 허허 웃는다. 충무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그는 현재 ‘드림텍’이라는 DVD 홍보 및 감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에 가보니 말로만 듣던 ‘달인’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무실을 빼곡하게 채운 DVD는 당연지사요, 희귀 LD와 각종 피겨들이 즐비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창고는 현재 DVD 때문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상태라는 사실. 25년간 제빵사를 해온(그는 일본 동경제과학교와 스위스 리치몬드 제과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우연히 미국의 한 친구가 선물로 준 외국 DVD를 보며 사운드에 감명을 받아서 수집을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불현듯 25년간 걸어온 길에서 급선회하는 것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궁금했다. “물론 많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그는 “행복하다”고 내내 힘주어 말했다. 그건 표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문득 벽장에 DVD를 꽂는 그의 환한 미소가 생각났다. 지용진 기자
현장 진행의 달인 만능 최지훈 선생
현장일지가 빼곡히 적힌 수첩부터 청테이프와 무전기까지, 등장부터 달인의 포스를 물씬 풍긴 최지훈 씨. 미술을 전공한 그가 제작부의 자질을 발견한 건 미술팀으로 참여한 <뜨거운 것이 좋아> 현장에서였다. 미술팀 일보다 제작부와 같이 현장 통제하는 게 더 익숙한 스스로를 발견한 그를 이미 주변에서도 미술팀이 아닌 제작부로 임명할 정도였던 것. 결국 그는 다음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에서 제작부 막내로 숨겨진 특기를 발휘했고 이젠 제작부에 뼈를 묻고 PD를 꿈꾸는 열혈 스태프다. “운전은 퀵 서비스보다 빠르게, 경찰보다 속도 측정기 위치를 잘 파악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청테이프 이용은 이삿짐센터 수준을 뛰어넘어야 하고, 계산은 은행원 수준으로! 어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웃음) 스태프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챙기는 그는 다음 영화 <우리집에 왜 왔니>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장소 헌팅을 위해 온갖 포털 사이트를 뒤지고, 관객들과 친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클(club.cyworld.com/wuljip)에 현장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있는 현장 진행의 달인 최지훈. ‘고양이보다 빠른 눈치’로 현장을 장악하는 그의 다음 영화 현장은 왠지 모르게 흥미진진할 것만 같다.
movieweek 이유진 기자